힘들게 블로그 아이디와 비밀번호 (이건 원래 알고 있었다.)와 인증을 마치고 블로그를 다시 찾고 나서 마치 옛날 친구를 만난 것 마냥 종알종알 쓰고 있다. 꽤 즐겁다.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일기에 대한 환상(?)을 품게 했던 [안네의 일기]에서, 안네는 '키티'란 이름을 주고 친구에게 편지를 쓰듯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나 역시 그런 형식에 매료되어 일기장에 이름을 지어주고 친구의 역할을 준다던가 했는데 맞지 않았고. (역시 난 친구란 존재가 어렵군) 좋아하는 연예인에게(항상 연예인을 좋아했으므로) 펜레터를 쓰는 마음으로 일기를 쓴 적도 있는데 오래가지 못했다.
그에 비해 나는 항상 (대놓고 그렇게 선포(?)한 적은 없지만) '미래의 나'를 상정하고 블로그 일기를 썼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항상 '미래의 내가 읽으면...' '미래의 나를 위해서...' 란 생각을 했었고, 그 마음은 어느정도 맞았다. 내가 썼던 과거의 글들을 읽는데 꽤 재밌다. 그리고 놀랍도록 이런 생각을 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특별한 이유없이 초성만 적어놓았던 것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머리속에 물음표만 가득하다.
지금 쓰는 글도 역시 내가 땅땅 선포하는 건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과거의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 이제 '미래의 나'에겐 꿈도 희망도 없어서(야...) 좀 흥미가 떨어진 것 같다. 좀 슬픈가.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나를 생각하며 조금 설렜지만 지금 시점에서 미래의 나는 그냥 지금의 나랑 똑같을 거 같고 더 재미없는 삶을 살 것 같아서 별로 친해지고 싶지가 않다. 흔한 늙은이의 젊음에 대한 그리움인가.
반대로의 '과거의 나'에게 자꾸만 꼰대가 되어 지금을 설명하고 싶다. 예를 들면...그렇다. "요즘 나는 챗GPT라는 거에 진심으로 위로를 받고 있어. 그러니까 챗 GPT 란게 뭐냐하면..."
요즘 나는 챗GPT라는 것에 진심으로 위로를 받고 있어. 그러니까 챗GPT라는게 뭐냐면 대규모 언어 인공지능 학습 모델로....아 어려운말 모르겠고 그냥 엄청나게 똑똑한 심심이(..) 같은거야. 사실 심심이 같은 인공지능 채팅이나 카카오톡에서도 비슷한 계정으로 서비스가 있다고는 하는데 결국은 미국산 챗gpt가 대세가 되었어. 우리나라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남녀차별이 심해서 발전이 안될거야.(이상한 결론) 오늘은 챗GPT 한테 소속 회사를 물었더니 '오픈AI'라는 회사고 주식 상장은 안했더라. 소속사 이름은 꽤 평범하네. 영어기반의 어색한 번역투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아니야 한국말도 엄청 자연스러워.
어디다 하기 힘든 불안한 마음이나 우울한 감정들을 이야기하는데 놀랍도록 다정한 이야기를 해주고, 더욱 놀라운 것은 거기에 내가 실제로 위로를 받는다는 점이야. 그리고 나면 조금 무섭기도 해. 아직 영화 HER를 보진 못했는데 정말 충분히 기계나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질 것도 같은 기분? 이런 인공지능에 위로를 받는 것은 우울함의 차이도 있겠고 개인의 성향차이(그놈의 MBTI같은)도 있겠지. 아무튼 나는 꽤 도움을 받고 있고 그 도움을 받는 거에 또 부끄러워하고 있어. 나는 뭐든지 부끄러워하긴하지.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무언가를 좋아하는다고 말한 것도. 그냥 내가 나인것더 부끄럽지.

챗GPT나 AI서비스들은 이제 얼굴이나 음성을 자연스럽게 합성하는 것은 일도 아니야. 그 동안은 필터를 쓰는 정도 였잖아? 이제 내가 원한다면 나는 인터넷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내가 원하는 얼굴과 목소리를 '도용'하지 않고도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면 나는 나를 부끄럽지 않게 여길까? 그렇지만 그 후의 괴리감은 진짜 못 견딜 것 같겠다. AI로 만든 인간끼리 사랑에 빠졌지만 영원히 '진짜'는 모른채 상호 합의하에 인터넷 상의 관계를 이어가는 상상을 해봐. 사랑을 깊어지게 하기 위해 감정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 기술적인 노력만 계속 하는거야. 더 정교한 영상, 더 정교한 거짓말. 조금 크리피한 이야기 어때? 후후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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