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짓기'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01.21 내 이해의 범위와 소설 주인공.
    어떤 사람은 체질적으로 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서는 나의 이해의 영역이 넓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전에는 이해한다고 말로는 했지만 진짜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몇 가지 이해했었던 것 같다. 주로 음식에 관해서 그랬는데, 내 경우 편식은 하지만 그냥 싫어서 안 먹는거지 신체적으로 어떤 증상이 나타나거나 알레르기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다른 사람이 특정 음식을 못 먹는 것도 나와 같은 기준에서 생각했던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개가 뭐는 못 먹으니 다른 걸 먹자.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너무 신경쓰지마." 하고 착한 척 이야기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쟤는 먹기 싫으니까 별 핑계를 다 대네.'하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흘러, 알레르기나 트라우마 따위의 단어를 들어 자신의 스페셜함을 어필하고 싶은 까다롭고 예민한 여자 아이 설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로 정말로 못 먹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은 나처럼 그냥 '먹기 싫어서' 란 이유가 아니라도 많은 합당한 이유가 있다는 걸 알았다. 정말 신체적인 반응을 보이는 알레르기가 있을 수도 있고 (우와, 난 그런건 소설이나 '마이걸'이나 '제8요일'같은 영화에만 나오는 건 줄 알았는데, 한국사람도 걸리는 병이었어? 수준의 무식.) 위나 장의 소화기능이 약할 수도 있고 어린 시절에 먹고 체했던 트라우마가 있을 수도 있고 태어나서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기에 굳이 큰 모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이 외에도 수 백가지의 의학적, 심리적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때서야 진심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요즘은 그 반대다.그 때는 나의 이해의 범위가 넓어졌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나의 이해나 상식의 범위가 얼마나 좁은가 하고 생각한다. 나는 꽤 편협하고 소심하다.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던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많은 중요한 것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여기에 쓰고 싶지만 그러면 이상해보일까봐 쓰지 못하겠다. 어떤 걸 쓰고 나서도 괄호로 설명을 덧붙인다. 사실 이건 매우 짜증나는 말이다. 나름 기발하거나 위트있다고 생각해서 쓰지만 마음속에 작게 걸리적거리는 것이 생각난다. 그래서 괄호에 변명을 덧붙여서 그런 상황을 피하고자 한다. 또 한 번 생각하지만 이건 꽤 짜증나는 일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이란 표현을 처음 접한 것은 움베르트 에코의 글에서였는데, 그 글은 '정치적으로 올바른'것에 대해서 (에코의 글들이 그렇듯이) 살짝 비꼬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을 써야한다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으면서 그가 그렇게 비꼬면서도 지켜야 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니까 지키긴 해야겠다는 마음을 항상 갖고 있다. 원치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싫다. 내가 정말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었는데 일상적인 용어로 상처를 주거나 오해를 받기는 싫으니까.
 
  여기까지 생각해보면 모든게 귀찮아진다. 내가 나로써 글을 쓰는게 꽤 피곤하다고 느낀다. 이 때에는 소설을 쓰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소설을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바로 이런 식의 괄호가 이제 신물이 난다.) 소설 속에 아주 몰상식하고 파렴치하고 무식한 이를 등장시켜서 내가 갖고 있는 온갖 편견과 독설을 쏟아내는 것이다. 그렇지만 읽는 이들은 그를 악인을 만들기 위해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 아닌가. 상상만으로도 벌써 즐겁다. 인종 편견도 심하고 남녀차별도 하고 약자를 무시하고 게으르고 더러운데 남보고 게으르고 더럽다고 욕하는. (제가 그렇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소설 속에서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니까 막 나쁜 말을 해도 사람들이 작가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여기까지 쓰니까 즐거워졌다. 근데 곧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소설 속에 악인이 있으면 그에 반(反)하는 선한 캐릭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악인만 가득 나오는 소설이나 악인이 이기는 소설은 싫으니까. 악인은 악행을 마음껏 하지만 처벌은 받아야 할 거다. 그러면 착하고 정의로운 등장인물을 써야 할텐데, 이게 또 싫지 않을까? 

    아니다 나쁜 사람을 쓰는 것은 어느정도까지는 기분이 좋지만 한계가 있을 것이다. 쓸만큼 쓰다가 착한 사람이 나타나서 정의로운 결말을 맺어주는 과정 자체는 괜찮을 것도 같다. 

    갑자기 고등학교 국어시간으로 돌아가서 국어 선생님의 열강이 떠오르는 것도 같은데, 소설 속 인물은 입체적이라고 전래동화가 아닌 이상 인물은 입체적이고 다면적이라고.
 
   그렇다면 나쁜 면을 갖고 있지만 사연이 있고 적당히 착하기도 한, 조금 비굴하고 오락가락 번민하는 그런 인물이 나올 것 같다. 음, 근데 그럼 그건 나네.
-끝-

 
    
Posted by 알로에
,